3분 만에 제대로 아는 재즈의 역사 – (1)

출처 : http://musicblog.co.kr/music/history/jazz/jazz-history-1/


여러분은 재즈(Jazz)에 대해 잘 알고 계신가요? 미국의 전통 음악인 재즈는 참 매력적인 음악 장르 중 하나입니다. 매력적인 만큼 복합적인 탄생 배경을 가진 재즈 음악은 그 뿌리를 정확히 짚기가 상당히 어렵죠. 하지만 제가 오늘부터 소개하는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나면 어떻게 오늘날 재즈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하나의 음악 장르가 되었는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거에요.


색소폰은 재즈 음악의 상징과도 같은 악기이다.


재즈는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까지 발전된 음악 장르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재즈가 시작했는지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100년 전 이야기가 아니라 700년 전 이야기부터 해볼까 합니다.


대항해시대

세계 역사에서 재즈라는 음악을 탄생하게 한 첫 번째 인물은 바로 이탈리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Marco Polo)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


그는 서유럽 국가들에게 아시아로 간다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거라 말하고 다녔던 사람이죠. 유럽의 물건들을 가져다 팔고, 그 돈으로 아시아의 귀한 물건들을 사서 돌아오면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다고 말이에요. 1295년 돌아온 마르코 폴로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주장했지만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또한 육지로 이동했기 때문에 위험 요소들이 너무 많기도 했고요.


그래서 이후 사람들은 모두 배를 이용하길 원했어요. 그리고 결국 여러분 모두들 잘 아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탐험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식민 시대를 열었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


콜럼버스의 항해는 지구가 사실은 평평하지 않고 둥글다는 가설 하에 진행된 일이었어요. 지구가 둥글다면 배를 타고 한 방향으로만 계속 항해하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아시아에 도착해서 더 많은 물건들을 싣고 와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었죠.


그리고 실제로 일은 그렇게 진행되었습니다. 그가 발견한 대륙이 사실은 아시아가 아니었다는 점을 제외하곤 말이에요. 그때 콜럼버스가 아시아라고 믿었던 그 대륙이 바로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입니다.


콜럼버스의 항해지도


당시 세계는 모두 다른 세상이었어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모두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지고, 서로가 존재하는지도 모른 채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죠. 그런 새로운 세계가 발견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콜럼버스는 카스티야 왕국 이사벨 여왕의 지원을 받았지만, 결국 파산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요.


그럼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려 시도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부족한 지원에도 항해 비용을 감당 할 수 있었을까요? 새로운 대륙에 도착했다 한들 아직 문명화가 되지 않았던 신대륙에서는 팔 수 있는 물건조차 없었는데 말이죠.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왜 신대륙에?

그곳에는 넓은 땅과 많은 자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배를 하거나 가공을 거쳐야만 하는 것들이었죠. 예를 들자면 사탕수수라던가 목화라던가 하는 것들이 있겠네요. 그래서 신대륙을 점령한 유럽인들은 생각을 바꿨어요. 신대륙에서 추출한 자원을 그 곳에서 직접 가공한 뒤, 유럽으로 가져와서 팔아 돈을 번다는 계획을 세웠지요. 그 말인 즉슨 누군가는 자원을 추출하고 가공하기 위해 노동을 해야 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이 짐작했듯, 그것이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포획당해 신대륙으로 오게 된 이유입니다.



아프리카에서 포획당한 흑인들


서유럽인들이 노동력 충당을 위해 사람을 잡아다가 노예로 쓰는 악마같은 행위를 시작한거죠.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흑인들은 노예가 되었고, 드넓은 신대륙에서 노동을 착취당했습니다. 지배자들은 흑인들이 땀흘려 수확하고 가공한 상품들을 유럽으로 싣고 가서 판매하여 큰 돈을 벌게 되었지요.


지금까지 여러분이 들은 이야기는 사실 미국 역사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아직 ‘재즈’ 라던가 ‘음악’ 이라는 단어를 꺼내지도 않았죠. 하지만 지금까지 설명했던 내용의 일부분이 재즈라는 음악의 탄생 배경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네요. 서유럽인들의 신대륙 정착과 식민지 시대의 시작, 그리고 아프리카 흑인 납치. 이 모든 일들로부터 재즈의 고장, 오늘날의 미국인 신대륙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3분 만에 제대로 아는 재즈의 역사 – (2)

출처 : http://musicblog.co.kr/music/history/jazz/jazz-history-2/


지난 시간에는 재즈의 탄생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미국의 역사에 대해 잠깐 설명 드렸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재즈의 고향이라고 불리우는 미국 루이지아나 주의 도시인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 포커스를 맞추어 보겠습니다.


1800년대 후반 뉴올리언스의 모습


뉴올리언스라는 도시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많은 도시들 중 뉴올리언스에서 재즈가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문화, 인종의 융합

먼저 지난 시간의 내용을 잠깐 복습해볼까요? 서유럽인들이 신대륙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농작물 따위를 경작하거나 그곳에서 얻은 원료들을 가공하기 위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불행하게도, 노예제도가 그들이 선택한 답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강제로 데려와서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했고, 흑인 노예들은 매일 무거운 짐을 지느라 등이 찢어질 만큼 힘겨운 노동에 시달려야 했어요.



크레올(Creole) 소녀들


그런 과정 중에 사람들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재즈의 탄생에 큰 역할을 한 배경이 있었습니다. 서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의 융합이었지요. 단순히 문화적 융합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혼혈이 탄생하게 되었고 수가 점점 많아졌습니다. 프랑스, 스페인인과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인종적 혼혈인 그들을 크레올(Creole)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그들은 이후 재즈의 탄생과 발전을 이끄는 주역이 되었지요.


앞서 뉴올리언스를 재즈의 고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왜 하필 뉴올리언스에서 재즈가 탄생한 것인지 궁금하실 거에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뉴올리언스가 가장 다양한 문화가 한데 모여 복합적으로 융합된 도시였기 때문인데,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뉴올리언스의 탄생 배경에 대해 설명 드리고 싶네요.


뉴올리언스의 탄생 배경

최초의 뉴올리언스는 프랑스의 점령지였습니다. 당시 프랑스인 르모인(Le Moyne) 형제가 있었는데, (사실 엄연히 말하자면 그들은 몬트리올의 뉴프랑스에서 태어난 캐나다인입니다.) 그 중 동생인 장 밥티스트 르모인 드 비앙빌(Jean-Baptiste Le Moyne de Bienville)이 지금 뉴올리언스의 위치에 뉴올리언스라는 도시를 세우고 통치하게 되었어요. 1718년의 일입니다. 이후 그는 ‘뉴올리언스의 아버지’ 라고 불리게 됩니다.


장 밥티스트 르모인 드 비앙빌 (1680-1767)


그런데 1754년부터 7년 동안 프랑스와 영국이 신대륙에서 전쟁을 치릅니다. 미국에서는 프렌치-인디언 전쟁(French and Indian War)이라고 부르고 유럽에서는 7년 전쟁(Seven Years’ War)이라고 부르는 그 전쟁에서 프랑스는 뉴올리언스의 통치권을 상실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땅을 영국에 넘겨주길 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들은 소급된 계약을 꾸며 뉴올리언스를 영국이 아닌 스페인에 넘겨주었지요.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가 함께 사용된 프렌치 쿼터의 거리 이름 간판


미국의 루이지아나 구입

그런데  7년 전쟁에서 승리했던 영국인들이 뉴올리언스의 통치권을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 뉴올리언스에 권력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고, 뉴올리언스는 프랑스이자, 스페인이자, 영국인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1803년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나폴레옹(Napoleon I)으로부터 루이지애나 주를 구입한 루이지애나 구입(Louisiana Purchase)를 통해 뉴올리언스는 공식적으로 미국의 한 도시가 되었죠.



토마스 제퍼슨이 나폴레옹으로부터 구입한 루이지애나 주


결론적으로 서유럽인들의 신대륙 발견, 노동력 충당을 위한 아프리카 흑인 포획, 신대륙 내 유럽인들의 권력 다툼. 이 모든 일들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면서 지구 상의 그 어떤 도시보다 가장 뒤섞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유일무이한 도시 뉴올리언스가 만들어지게 된 겁니다.



3분 만에 제대로 아는 재즈의 역사 – (3)

출처 : 출처 : http://musicblog.co.kr/music/history/jazz/jazz-history-3


지금까지 왜 재즈 음악이 존재하는지 왜 뉴올리언스에서 처음 탄생되었는지 이야기했는데요, 오늘은 식민지 시대에 관한 얘기부터 시작해보려 합니다. 식민지 시대의 뉴올리언스에는 프랑스인, 스페인인 그리고 영국인.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여 살고 있었어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도시였죠.


그 사실에 조금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뉴올리언스가 재즈의 고장인 이유 중 하나거든요.


신대륙의 노예제도

조금 다른 이야기로 가볼까요? 바로 노예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노예들은 아프리카에 거주하던 흑인들이었습니다. 노예들로부터 노동을 착취하던 식민 지배국들은 노예를 통제하기 위해 규율을 만들어야 했죠. 하지만 각자의 방법은 상이했습니다.


영국의 경우를 이야기해볼까요? 버지니아, 노스 캐롤라이나와 같은 곳에 자리를 잡은 영국인들은 사탕수수와 목화를 수확하기 위해 노예들을 데려왔습니다.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들이 타악기 연주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죠. 하지만 곧 영국인들은 노예들이 단지 타악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그들에게는 음악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로 일종의 의사소통, 영국인 지배자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던겁니다.


타악기 연주는 아프리카인들의 오랜 전통 문화이다.


영국인 지배자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했어요. 그들의 노예들이 ‘오늘 밤 저 백인들을 죽이자’ 라고 대화하고 있었을지 모르잖아요? 그들은 흑인들이 타악기 연주하는 것을, 그들의 문화 활동을 금지시켰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흑인들이 일을 하게끔 통제하는 방법이었어요. 그것 외에도 입에 담기 힘든 많은 통제 방법들이 있었죠. 말할수록 참 부끄러운 신대륙의 역사입니다.


노예들의 기독교 개종

하지만 뉴올리언스에서는 조금 달랐어요. 당시 흑인 노예들을 소유하고 있던 주인들의 첫 번째 목적은 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것이었어요. 왜 그랬냐고요? 자신들의 잘못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것이었죠.


여러분이 당시 노예를 소유하고 있던 주인들이라고 생각해보세요. 물론 노예를 소유함으로써 그들이 대신 내 일을 해주는 것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웠겠지만, 그것이 윤리적으로 결코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거에요. 그래서 그들은 합리화를 시작한거죠. 그들이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들에게 힘든 노동을 시키는 대신, 흑인들이 이단인 우상숭배에서 벗어나 기독교로 개종할 수 있게 해준다는 개념이었습니다. 그것이 모든 지배자들의 가장 큰 목표였죠. 물론 스페인과 프랑스인들은 카톨릭으로 개종시키고자 했고, 영국인들은 성공회로 개종시키고자 했죠.


노예들을 개종시키려는 가장 큰 목적은 자기합리화였다.


하지만 가장 큰 진짜 목표는 훗날 사람을 노예로 사용했던 사실로 인해 받게 될 비난을 보호할 방패막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지옥으로 떨어질 운명이었던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했다.‘ 라는 명목으로 말이죠. 그렇다면 그 방법은 어땠을까요?


콩고 스퀘어(Congo Square)

뉴올리언스에서 흑인들을 개종시키려 사용했던 방법은 특별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하에, 크리스찬의 주일인 일요일에 행해지는 아프리카 노예들의 기도 방식은 그대로 존중하여 내버려두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옛날 뉴올리언스에서는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동안 매주 아프리카 음악이 연주되었죠. 콩고 스퀘어(Congo Square)라는 곳에서 말이에요.


콩고 스퀘어(Congo Square)에서 타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었던 흑인 노예들.


흑인 노예들은 그 곳에서 일주일에 하루나마 자유롭게 자신들의 방식으로 악기를 연주하며 춤추고 노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콩고 스퀘어라는 이름을 잘 기억해두세요. 왜 재즈가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매우 중요한 키워드니까요.




3분 만에 제대로 아는 재즈의 역사 – (4)

출처 : 출처 : http://musicblog.co.kr/music/history/jazz/jazz-history-4


지난 시간까지 왜 재즈가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는 조각조각의 이야기들을 여러분에게 들려드렸어요. 오늘부터는 그 조각들을 맞춰보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대륙에서의 서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의 혼혈이라고 전에 말씀드렸죠. 그 중에서도 뉴올리언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미시시피 강(Mississippi River)

지리적인 이야기를 먼저 시작하려고 하는데요, 여러분 모두 미시시피 강(Mississippi River)에 대해 알고 계실거에요. 미국 북부에 있는 가장 큰 강이지요. 그리고 뉴올리언스는 맥시코만과 미시시피 강을 끼고 있는 미국 남부의 가장 큰 항구도시입니다. 항구도시는 세계와 연결되는 커다란 문과도 같죠.


미시시피강(Mississippi River)


미시시피강은 북쪽의 미네소다부터 루이지아나주를 가로질러서 뉴올리언스까지 내려오는 거대한 강입니다. 그 시절은 자동차가 발명되기 전이었고, 대부분의 운송이 강이나 바다를 통해 이루어졌지요. 그런 점에서 뉴올리언스는 무척 축복받은 곳이었습니다. 미국 대륙의 모든 것들이 뉴올리언스로 모였고, 세계의 모든 것들이 뉴올리언스 항구로 왔어요. 그게 뉴올리언스에서 독특한 문화가 형성된 이유이죠.


뉴올리언스(New Orleans)

뉴올리언스는 물로 인해 다른곳에서는 볼 수 없는 커다란 혜택을 받은 도시였습니다. 프랑스, 스페인, 영국이 완전히 짬뽕된 식민시대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모든 문화들이 적절히 조화되었던 도시에요. 그리고 그곳에는 흑인 노예를 다루는 아주 흔치 않은 방법이 있었습니다. 노예들의 기독교 개종을 위해 일요일에 아프리카인들의 문화 활동이 있었지요. 지난 시간에도 이 아프리카인들의 풍습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했어요. 기억나시죠? 🙂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 뉴올리언스(New Orleans)


1803년 이후 뉴올리언스는 미국의 일부였습니다. 그때는 노예제도가 있던 시기였어요. 그런데도 아프리카인의 제사 음악 풍습이 매주 일요일 누구나 갈 수 있는 뉴올리언스에서 공개적으로 행해졌던거죠. 1년에 52회, 10년에 520회, 20년에 1040회… 그 일들이 계속되면서 뉴올리언스는 정말로 특별한 도시가 되어갔습니다. 음악이라는 멋진 재료들이 쌓이게 된거죠.


하지만 재료만 있어선 안됩니다. 정말로 맛있는 요리를 먹고싶다면 쉐프가 필요하겠죠? 그리고 19세기의 말로 접어들던 뉴올리언스에서, 정확히는 1877년 9월 6일, 찰스 조셉 볼든(Chales Joseph Bolden)이라는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스 조셉 볼든(Charles Joseph Bolden)


찰스 볼든(Charles Bolden)

찰스 볼든은 흑인이었습니다. 그는 특별한 음악가였어요. 그 전까지 다른 음악가들이 들었던 적 없는, 다양한 종류의 음악들이 완전히 뒤섞인 뉴올리언스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거든요. 아마 그는 어렸을 때 콩고 스퀘어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들었을겁니다. 콩코 스퀘어의 그 문화는 안타깝게도 흑백 분리정책에 의해 결국 사라지게 되었거든요. 어떤 역사책에서는 1885년에 닫혔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정확한 연도는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콩고스퀘어가 1877년부터 1885년 사이에 존재했다면, 첫 번째 재즈 뮤지션인 찰스 볼든은 어린 시절부터 분명 매주 콩고 스퀘어에서, 뉴올리언스의 다른 곳에서 색다른 음악을 들었을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귀와 박자감각을 단련시켰고, 그가 뮤지션이 되는 영향을 주었겠지요.



버디 볼든 밴드(Buddy Bolden Band)


그는 그 전까지의 음악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연주했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스윙(Swing)이라고 부르는 리드미컬한 음악을 했어요. 눈치채셨나요? 제가 언급한 찰스 볼든은 바로 그 유명한 재즈의 아버지, 버디 볼든(Buddy Bolden)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버디라고 불렀죠.



3분 만에 제대로 아는 재즈의 역사 – (5)

출처 : 출처 : http://musicblog.co.kr/music/history/jazz/jazz-history-5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왜 뉴올리언스가 재즈의 탄생지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너무 지겹지는 않으셨는지 모르겠어요. 이제 드디어 뉴올리언스의 ‘음악’, 재즈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네요.


초기 재즈의 형식

뉴올리언스는 정말 특별한 도시였습니다. 식민지 배경의 역사, 다른 지역에 비해 특별했던 노예 제도, 항구와 거대한 미시시피강을 통해 미국의 중심부터 전세계로 연결되는 지리적 특성을 갖고 있었죠. 그리고 천재 뮤지션 버디 볼든(Buddy Bolden)을 통해 새로운 리듬의 음악 연주 방식이 만들어졌고, 마침내 미국이 자랑하고 세계가 사랑하는 재즈라는 장르의 음악이 탄생했어요.



뉴올리언스에 있는 ‘재즈의 아버지’ 버디 볼든 동상


재즈가 처음 연주되었을 때는 그냥 그 리듬이라는 형식밖에 없었습니다. 리듬 안에서 마음대로 연주하는 것이었죠. 어떤 악기를 사용할지에 대한 가이드 라인도, 곡의 레파토리도 없었어요. 즉 그냥 스윙 리듬(Swing Rhythm)을 넣어 음악을 연주하는 정도의 형태였습니다.


버디 볼든의 스윙 리듬

그 시절에는 ‘행진곡의 왕’ 이라 불렸던 존 필립 수자(John Philip Sousa)가 있었습니다. ‘성조기여 영원하라(The Stars and Stripes Forever)’ 라는 곡이 특히 유명했죠. 아주 웅장하고 힘이 넘치는 행진곡이이에요. 물론 버디 볼든도 그 음악을 연주했을겁니다. 워낙 유명한 곡이니까요. 하지만 버디 볼든의 연주는 존 필립 수자와는 완전히 달랐죠.



스윙 리듬에 대한 설명. 1분 38초부터


버디 볼든의 연주에는 그만의 특별한 리듬적인 정체성이 있었어요. 템포를 빠르게 하지 않아도 보다 강렬하고, 빠르고 신나는 기분이 드는 리듬. 그 이전에 누구도 갖고 있지 않았던 리듬의 억양이었죠. 그게 바로 처음 등장한 재즈의 요소이자 재즈의 에센스, 스윙 리듬(Swing Rhythm)이었습니다.


뉴올리언스 재즈

그리고 이미 말했듯 당시에는 그게 전부였어요. 하지만 뉴올리언스에서 몇 십 년이 지나는 동안 스윙 음악의 시스템이 구축되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만들어진 그 재즈의 시스템을 사람들은 뉴올리언스 뮤직이라고 불러요. 그 곳에서 연주되었던 음악이고, 그 곳에서만 연주되었던 음악이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딕시랜드(Dixieland)라고도 불렀는데 뉴올리언스와 그 주변의 늪지대를 일컫는 말입니다. 결국 전통 재즈, 딕시랜드, 뉴올리언스 재즈 등은 모두 같은 뜻이지요.


그럼 정확히 그 시스템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바로 그 어떤 음악에서도 연주할 수 있는 앙상블 잼(Ensemble Jam)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엔 스윙 리듬이 있어야 했죠. 시스템이 구축되긴 했지만 사실 특정한 악기를 연주해야 한다는 규칙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성음악(Polyphony)의 형식이었죠.


다성음악

뉴올리언스 재즈 이전의 재즈는 이제 일반적으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음악 시스템을 사용했습니다. 한 명의 혼연주자가 연주하고, 다른 한 명의 연주자가 다른 방식으로 연주하고, 또 다른 혼 연주자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연주하고… 당시에 아마 네 명이나 그 이상의 혼연주자들이 연주했을거에요.



다성음악 형식의 재즈 밴드. Jelly Roll Morton’s Red Hot Peppers Orchestra.


하지만 뉴올리언스 재즈는 달랐습니다. 연주자들마다 각자의 라인을 연주하지만, 결국 그것들이 하나의 곡을 구성하였죠. 트럼펫, 코넷, 트럼본, 클라리넷 등의 다양한 소리를 가진 악기들을 각자의 특색있는 소리로 조화를 이루며 연주했습니다. 물론 스윙 리듬도 빠지지 않았죠. 오늘날의 재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솔로(Solo)연주도 뉴올리언스 재즈에서부터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즉 뉴올리언스 음악은 다성음악과 스윙 리듬을 기반으로 모두가 함께, 그리고 동시에 연주하는 형태의 앙상블 잼이었다고 설명드릴 수 있겠네요.


3분 만에 제대로 아는 재즈의 역사 – (6)

출처 : 출처 : http://musicblog.co.kr/music/history/jazz/jazz-history-6


지금까지 재즈의 존재 배경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진짜 재즈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재즈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는 재즈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재즈는 자유다!(Jazz is freedom)” 아주 간결하고도 멋진 표현이죠.



재즈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


사실 그게 재즈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재즈 음악의 진짜 매력이죠. 뮤지션들은 자유롭게 음악을 연주하고, 관객들은 그들이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을 즐기고. 그렇게 연주자와 관객의 관계가 형성되는 참으로 멋진 음악이에요.


‘재즈는 자유다.’

지난 시간에 이야기한 전통 재즈, 뉴올리언스 재즈에 대해 기억하시나요? 뉴올리언스에서 탄생한 시스템, 다성음악(Polyphony)의 형태로 연주되었던 재즈 음악이죠. 아마 여러분들이라면 실제로도 많이 들어보셨을거에요. 트럼펫, 클라리넷, 트럼본 등의 악기들이 모두 다른 음계를 다른 방식으로 연주하지만, 그것이 합쳐져 하나의 곡이 되는 형태였죠.


그들은 서로의 영역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스윙 리듬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연주했어요. 그게 그들이 재즈 음악을 좋아한 이유였지요. 다른 연주자들은 작곡가가 쓴 곡의 악보를 받아서 그대로 연주하기를 강요 받았지만, 재즈 연주자들은 그런 강요를 받을 필요가 없었거든요.



자유로운 분위기의 재즈 공연



재즈 연주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의 음악을 듣는 관객들이 있었겠죠.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관객이 없으면 공연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당시 관객들은 재즈 음악이 자유로운 즉흥 연주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이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부러 더 즉흥적인 연주를 해달라고 연주자들에게 요청하기까지 했죠.


뉴올리언스 재즈의 변화

그러자 재즈 뮤지션들은 오히려 무언가를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더욱 즉흥적으로, 자연스럽게 숙련된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뽐내는 데 열중하기 시작했어요. 자신을 드러내기를 원했던거죠. 그런데 여기서 약간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연주하는 상황에서 각각의 연주자가 자신을 드러내려고 자신의 스타일을 더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물론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지만, 음악 자체가 어수선해지는 역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뉴올리언스 재즈는 보다 발전된 형태의 앙상블 음악이었어요. 이미 구축된 앙상블 음악에 즉흥적으로 자신만의 연주를 집어넣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솔로 연주라는 형식이 만들어지고, 솔로가 재즈의 일부로 도입되는 일은 재즈 역사상 가장 복잡한 과정이었죠. 사람들은 늘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이 신선함을 가져다주리라 기대하지만 사실 그게 실제로 일어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으니까요




솔로(Solo) 연주의 개척자. 시드니 부셰(Sidney Bechet)


하지만 뉴올리언스 재즈의 개척자, 시드니 부셰(Sidney Bechet)는 그것을 멋지게 시작해냈습니다. 재즈 역사상 첫 번째 혁신이 스윙 리듬의 등장이었다면, 두 번째 혁신은 단연컨데 솔로(Solo) 연주의 등장이었죠.


솔로 연주의 등장

앙상블 형식의 음악이었던 재즈에서, 그들은 어떻게 각각의 연주자가 각자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그 결과가 바로 솔로였습니다. 밴드가 함께 연주하는 기존의 형식에 다른 연주자들이 빠지고, 단 한 사람의 연주자만 기존 멜로디에서 벗어나지 않은 선에서 즉흥 연주를 하는 개념이었어요. 주제와 변주(Theme and Variations). 아주 오래된, 그리고 단순한 공식이죠.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환상적인 트럼펫 솔로


재즈에서는 주제(Theme)를 앙상블 연주에서 가져오고, 변주(Variations)를 개개인이 자신의 역량으로 만들어 기존의 멜로디를 대체했습니다. 그 도중에 다른 연주자들은 연주를 하지 않거나, 곡의 구성에서 꼭 필요한 반주를 연주해주었죠. 물론 스윙 리듬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3분 만에 제대로 아는 재즈의 역사 – (7)

출처 : 출처 : http://musicblog.co.kr/music/history/jazz/jazz-history-7


오늘은 특별한 인물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뉴올리언스 재즈의 개척자 중 한명이죠. 바로 킹 올리버(King Oliver)라는 사람입니다. 이미 그 이름에 익숙하신 분들이 많으실거에요. 그의 원래 이름은 조(Joe), 조셉(Joseph)이지만 사람들은 그를 킹(King)이라고 불렀죠. 1885년에 태어났다는 자료도 있고 1881년에 태어났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마 정확하게는 알려져있지 않나 봐요.


조 킹 올리버(Joe King Oliver)


킹 올리버(King Oliver)


그는 20세기 초반부터 전문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위대한 밴드 리더이자 코넷(Cornet)연주자였던 그는 뉴올리언스에서 뉴올리언스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 중 가장 사랑받는 뮤지션이 었습니다. 재즈라는 음악이 뉴올리언스에서만 연주되던 시절에 말이에요.


뉴올리언스 시절의 그는 모든 밴드들이 팀에 합류하길 원했던 슈퍼스타였죠. 밴드를 갖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밴드에 킹 올리버를 고용했고, 킹 올리버는 밴드를 더 높은 수준의 레벨로 만들었어요.


흑인 대이동

그리고 드디어 재즈 음악이 뉴올리언스 바깥에서 연주되는 역사적인 순간이 왔습니다. 대공황의 영향으로 흑인 대이동이 시작되면서 뉴올리언스 출신의 재즈 뮤지션들도 그들에 대한 수요가 많았던 다른 도시들을 향해 발걸음을 딛기 시작했어요.


1910년부터 시작된 흑인 대이동(The Great Migration)


킹 올리버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대이동의 일부였을 뿐 아니라 재즈의 확산에 아주 큰 역할을 했죠. 1918년 그는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북쪽으로 이동했고,  킹 올리버는 시카고에 정착했습니다.


그는 시카고에서도 그가 가진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뉴올리언스에서 했던 일들을 계속할 수 있었어요. 자신의 밴드의 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앞다투어 킹 올리버를 고용하고자 했고, 킹 올리버가 이끄는 밴드는 최고의 밴드가 되었죠.


킹 올리버 크리올 재즈 밴드

몇 년을 그렇게 생활하던 그는 1920년, 자신의 이름을 건 밴드를 결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밴드를 ‘킹 올리버 크리올 재즈 밴드(King Oliver’s Creole Jazz Band)’ 라고 이름지었습니다. 누구라도 재즈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밴드로 거론할 밴드이죠.


킹 올리버 크리올 재즈 밴드(King Oliver’s Creole Jazz Band)


정말 중요하고도 감사한 사실은 그들이 녹음을 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게 그렇게 중요하고도 감사한 사실이냐고요? 초기 재즈 뮤지션들의 음원은 정말 흔치 않거든요. 사실 1917년 이전까지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1918년부터야 조금씩 밴드들이 녹음을 하기 시작했죠.  1923년 인디아나주의 리치몬드로 간 킹 올리버 크리올 재즈 밴드는 이틀동안 녹음을 했고, 그들이 녹음한 그 음반은 후에 모든 것을 바꿔놓습니다.


그들의 음악

킹 올리버 크리올 재즈 밴드는 뉴올리언스 재즈를 대표하는 다성음악(Polyphony) 형식의 전통 앙상블(Ensemble) 음악을 녹음했습니다. 하지만 앙상블 형식에 그치지 않고 지난 시간에 다루었던 새로운 형식인 솔로(Solo) 연주 또한 포함되었죠.


킹 올리버는 ‘Dipper Mouth Blues’에서 세 코러스의 블루스 솔로를 연주했으며, 킹 올리버의 제자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도 ‘Chimes Blues’에서 솔로 연주를 녹음했습니다. 밴드에는 조니 돕스(Johnny Dodds)라는 클라리넷 연주자도 있었는데, 그 또한 솔로 연주에 능한 아주 훌륭한 연주자였습니다.



킹 올리버 크리올 재즈 밴드가 녹음을 한 덕분에 우리는 축복 받은 천재들로 구성된 전문 밴드가 연주한 전통 재즈, 뉴올리언스 재즈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위대한 재즈 뮤지션, 천재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음악도요.



3분 만에 제대로 아는 재즈의 역사 – (8)

출처 : 출처 : http://musicblog.co.kr/music/history/jazz/jazz-history-8


3분만에 제대로 아는 재즈의 역사가 드디어 마지막 회입니다. 지금까지 재즈의 기원, 재즈의 탄생 배경, 그리고 몇몇 재즈 뮤지션들에 대해 이야기 해드렸습니다. 이제 누가 재즈의 역사에 대해 물어보더라도 자신있게 대답하실 수 있겠지요? 오늘은 초기 재즈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명, 천재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젤리 롤 모튼(Jelly Roll Morton)에 대한 이야기로 길었던 재즈의 역사 포스팅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젤리 롤 모튼

젤리 롤 모튼도 지금까지 소개해드렸던 재즈 뮤지션들처럼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1889년 10월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죠. 뉴올리언스에서 버디 볼든(Buddy Bolden)의 음악과 뉴올리언스 재즈를 들으며 자란 그는 정말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첫 시간에 크레올(Creole)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기억나시나요? 그 역시 크레올 출신이지요.


재즈 전도사이자 최초의 재즈 작곡가 젤리 롤 모튼 


그는 피아노를 주로 연주했지만 트럼본도 연주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기타 연주를 녹음한 적도 있고, 노래도 곧잘 했지요. 하지만 재즈 전도사, 최초의 재즈 작곡가로 불리는 그의 진짜 무기는 작곡과 피아노 연주였습니다.


재즈 전도사

젤리 롤 모튼은 뉴올리언스에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일찍 뉴올리언스를 벗어나 다른 도시에서 연주하기 시작했죠. 그는 L.A,. 시카고(Chicago), 덴버(Denver)에도 갔고, 캘리포니아(California)에도 갔습니다. 미국의 각 도시에서 모튼은 뉴올리언스 재즈를 ‘조금’ 아는 수 많은 음악가들을 만났죠. 모튼은 그들을 만나서 어떻게 했을까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래 당신들, 우리 음악에 대해 좀 아는 것 같군. 하지만 당신들은 진짜 우리 음악을 하고 있지는 않아.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지.’


젤리 롤 모튼의 경쾌한 레그타임 연주


젤리 롤 모튼은 그의 음악가 동료들에게 뉴올리언스 음악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음악 상점(당시에는 음반을 파는 곳이 아니라 악기와 악보를 파는 곳이었습니다)에서 시연을 하기도 했죠. 그렇게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뉴올리언스 음악, 재즈에 대해, 스윙하는 방법에 대해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 바로 곡을 준 것이죠. 그것이 재즈가 오늘날 하나의 음악 장르로 인정된 것에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재즈의 첫 번째 작곡가였고,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였습니다.


최초의 재즈 작곡가

그는 초기 재즈의 명곡인 정글 블루스(Jungle Blues), 더 펄스(The Pearls)와 같은 곡들을 작곡했습니다. 킹 포터 스톰프(King Porter Stomp)는 아마 여러분도 모두 아시는 모튼의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일거에요. 또한 모튼은 썸데이 스윗하트(Someday Sweetheart)와 같은 아름다운 발라드도 작곡했으며, 울버린 블루스(Wolverine Blues)와 같은 블루스도 작곡했어요.


‘레드 핫 페퍼스’ 시절의 모튼의 걸작으로 꼽히는 ‘Dead Man Blues’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그는 스톰프 음악, 블루스는 물론 달콤한 음악도 작곡하고 연주할 수 있었던 만능 뮤지션이었습니다. 그의 곡은 언제나 스윙 리듬과 완벽한 멜로디와 그 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발전된 형태의 코드 진행을 갖고 있었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재즈 뮤지션들에게 연주할 수 있는 무언가를 주었다는 것이었죠. 젤리 롤 모튼은 후배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는 않았다고 알려져있지만, 결과론적으로 그는 재즈가 하나의 장르로 정착되는데 큰 공을 세워 후배들의 앞길을 닦아준 위대한 아티스트였습니다.


마치며

재즈의 탄생, 기원, 그리고 젤리 롤 모튼에 이르는 초기의 역사까지의 기나긴 포스팅이 끝이 났습니다. 재즈를 모르는 분들이 최대한 짧은 시간 내에 쉽게 재즈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포스팅이었는데 어떠셨나요? 재즈의 더 많은 장르와 아티스트들까지 소개하고 싶었지만 재즈를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질까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혹시 이 포스팅이 여러분이 사랑하는 재즈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신다면 여러분의 SNS에, 여러분이 애용하는 커뮤니티에 공유해주세요. 한국의 재즈 뮤지션들에게, 그리고 저에게도 큰 힘이 될거에요. 🙂

그 동안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앞으로 더 좋은 포스팅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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